9. 놋뱀을 숭상했던 어리석은 백성들과 다를 바 없어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던 사라! 그 사라를 중시한 김주철의 주장은 놋뱀을 숭상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들을 물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민21:6~9)
뱀에게 물려 죽게 된 자들이 놋뱀을 쳐다보자 살아났습니다. 놋뱀 때문일까요 아니면 ‘놋뱀을 쳐다보면 살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 때문일까요? 당연히 그들을 살게 한 것은 놋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었습니다. 놋뱀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이없게도 이 놋뱀을 하나님의 성전에 두고 수백 년을 섬겼습니다.
“히스기야가 …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왕하18:3~4)
이삭이 아브라함의 후사가 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때문이었지 사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도구로 사용되었던 사라를 숭상시하는 김주철의 사고방식과 놋뱀을 숭상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음이 다를 바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