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아브라함의 씨는 누구로 말미암는가?
성경에서는 구원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아브라함의 후사 또는 아브라함의 씨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씨가 되는 조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창21:12)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김주철의 말처럼 ‘사라에게서 난 자’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사라’라는 어머니로 말미암아 후사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기 전 약속에 의해 후사로 정해졌다는 말씀입니다.
김주철이 만든 아래 도표는 사라를 중심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데 전혀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김주철은 설명하기를 첫째, 엘리에셀은 양 부모가 모두 종의 신분이어서 아브라함의 후사가 될 수 없고, 둘째, 이스마엘은 아버지는 아브라함이지만 어머니가 종의 신분인 하갈이어서 후사가 될 수 없고, 마지막으로 이삭은 아버지도 아브라함이고 어머니도 자유자인 사라임으로 아브라함의 후사가 될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위 도표나 김주철의 주장의 핵심은 ‘사라’라는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사라’가 유업을 얻을 키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김주철의 이러한 주장은 아브라함의 후계자가 육적인 혈통을 따라 결정되었다는 주장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막상 성경에는 김주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위 도표는 그럴듯한 김주철 개인의 주장일 뿐입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성경은 오히려 후사가 되는 일이 혈육을 따라 되는 일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롬4:19)
아브라함과 사라의 태는 이미 죽었고 육적인 혈통으로 자녀를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이삭이 잉태되고 태어나는데 아브라함이나 사라로부터 아무 것도 제공된 것이 없고 사라는 단지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이삭은 예수님처럼 성령으로 잉태되고 태어났습니다. 이삭이 사라의 육적인 혈통 때문에 약속의 자녀가 되었다는 김주철의 주장은 성경과는 거리가 먼 자의적인 주장일 뿐입니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예언)의 자녀가 씨(후사)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예언)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롬9:8-9)
만약에 하갈이 낳은 자식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다면 얼마든지 아브라함의 씨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씨가 된 것은 아브라함이라는 남성과 사라라는 여성의 결합의 결과가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예언)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갈라디아서 4장의 ‘약속의 자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김주철이 만든 도표와 사라를 빗대어 장길자를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그들의 교리가 얼마나 비성경적이며 황당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아브라함의 씨가 된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예언)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잉태된 자라야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