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일출설과 일몰설
1. 6일 창조에 나타난 하루의 시작은 일출
【창1:1~2】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흑암이 깊음 위에 있어 오직 어두움만 있을 뿐 아직 저녁이 되는 일도 없으며 아침이 되는 일도 없다. 당연히 낮도 없고 밤도 없으며 아직 날이 시작되기 전의 영원 전 상태이다. 하나님께서 6일 창조를 하시기 이전의 영원한 상태를 위 구절과 같이 말씀하셨다.
【창1:2~5】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시는 순간이 6일 창조 첫째 날의 시작이다. 흑암한 세상을 빛과 어두움으로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셨다. 처음으로 낮과 밤이 창조되었고 낮과 밤의 경계를 이루는 아침(일출)과 저녁(일몰)이 생겼다. 첫째 날의 창조를 마치니 저녁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밤을 지나 아침이 되었다. 아침이 되었을 때 즉 밤이 모두 지나갔을 때 하루가 완성되었고 이를 첫째 날이라고 하였다.
【창1:5】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여기서 “저녁이 되며”라는 말씀은 저녁이 되기까지 빛의 시간 곧 낮이 완성되었다는 뜻이고, “아침이 되니”라는 말씀은 아침이 되기까지 어두움의 시간 곧 밤이 완성되었다는 말씀이다. 이처럼 흑암한 세상에 빛이 창조됨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낮과 밤이 생겼으며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24시간의 하루가 완성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빛으로 시작된 이 날을 두고 첫째 날이라고 하셨다.
2. 예수님 시대의 시간 사용법에 나타난 하루의 시작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포도원 주인과 품군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가 나온다. 비유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당시 유대인들이 일출에서 시작하여 일몰까지를 12시간으로 나누는 시간 법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마20:1-12】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 삼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제 육시와 제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하고 제 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중략)… 제 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위 비유 가운데 아침, 삼시, 육시, 구시, 십일시라는 시간이 나온다. 그리고 십일시에 온 사람들에 대하여 저물 때까지 한 시간 일했다고 하였다. 일출을 0시 일몰을 12시로 하여 낮 시간을 12시간으로 나누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하루의 시작점인 일출을 0시로 한 셈이다.
3. 언어습관에 나타난 하루는 ‘밤과 낮’이 아니라 ‘낮과 밤’이다.
【겔12:7-8】 내가 그 명대로 행하여 낮에 나의 행구를 이사하는 행구같이 내어 놓고 저물 때에 내 손으로 성벽을 뚫고 캄캄할 때에 행구를 내어다가 그 목전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니라. 이튿날 아침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낮을 오늘의 기준으로 할 때 이어지는 밤을 이튿날이라 하지 아니하고 다음에 오는 새로운 아침을 두고 이튿날이라고 하였다. 하루의 기준점이 일몰이 아니라 일출이기 때문이다.
【수4:1~3】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둘을 취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의 유숙할 그곳에 두라
오늘 낮을 기준으로 하여 다가오는 밤을 오늘 밤이라고 하였다. 낮에서 이어지는 밤을 두고 다음 날이라 하지 않고 오늘이라 한 것은 하루의 기준점이 일몰이 아니라 일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활 속 언어 사용 습관에 나타난 일출 기준의 날짜 개념은 성경 속에서 더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4. 예수님의 장례가 종료된 시점을 통해 본 하루의 기준은 일출
복음서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의 장례 절차는 안식일이 되기 전에 마쳐야 함으로 매우 서둘러 진행되었다. 그리고 장례 절차를 모두 마칠 즈음 안식일이 거의 다 되었다고 묘사하였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장례 절차가 종료된 것은 안식일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는 의미인데, 그 시점이 일출과 일몰 중 어느 시점이었을까?
예수님은 새벽에 십자가형이 선고되었고(요19:14),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으며(막15:24~25) 오후 3시가 지나면서 운명하셨다.(마27:45~46, 눅23:44~46) 예수님이 숨을 거둔 이후 제자들이 로마군으로부터 예수님의 시신을 인계받아 엄숙한 장례 절차를 거쳐 돌무덤에 안치하는 과정이 일몰 전에 마쳐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부터 예수의 시신이 돌무덤에 안치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절차와 과정들을 거쳤는지 알아보고 그 모든 장례 절차가 마쳐진 것은 일몰이 아니라 그 다음날 일출 직전이었음을 확인해 보자.
【마27:57-62】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그 이튿날은 예비일(헬라어 파라스큐에) 다음 날이요
마태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 운명하신 후에 아리마대 요셉이 형장에 왔다. 그는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 한 후에 빌라도에게 가서 시신을 인수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자신의 돌무덤에 시신을 안치함으로써 장례식을 마쳤다. 마태복음의 기록만으로는 예수님의 시신을 인수받은 과정이나 장례 절차가 생략되어 있어 한두 시간 안에 모든 장례식을 마친 것으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다른 복음서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예수님의 시신을 인수 받는 과정부터 매우 까다롭고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인수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다. 빌라도 총독의 관저에 가서 면담을 요청하고 상황을 설명 한 후 문서로 허가증을 받아 내는 것이 쉽게 되는 일은 아니었다. 적어도 형장과 관저를 두 번 오가는 수고가 이루어졌고 구두가 아닌 문서 허가증을 받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막15:42-47】 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지 오래냐 묻고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 주는지라.
예수님이 숨을 거둔 시점은 오후 3시경이지만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아리마대 요셉이 찾아 온 시점이 이미 저물었을 때라고 하였다. 그러나 공권력에 의해 집행된 십자가형이었기 때문에 그 시신을 인수하려면 빌라도 총독의 허가서가 있어야 했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숨이 끊어진 사실을 확인한 후에 갈보리 언덕에서 내려와 빌라도 총독을 찾아갔다. 로마의 총독을 독대하여 만나는 일이 그리 만만한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의 신분 때문인지 모르나 빌라도 총독을 접견할 수 있었다. 아리마대 요셉의 요청을 접한 빌라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이 끊어진 상태였는지부터 확인해야만 했다. 총독은 사람을 보내 형장에 나갔던 백부장을 불러들였고 그의 보고를 들은 후에야 시신을 인계해도 좋다는 지시를 내렸다.
네 복음서를 종합적으로 비교하여 분석해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인수한 시점은 이미 해가 저문 이후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형수의 시신을 가족에게 인계하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적당히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요셉을 접견하여 청원을 받은 빌라도 총독은 부하를 시켜 집행 현장을 확인하도록 했고 그 이후에야 요청에 응한다. 그렇다고 해서 요셉이 형장에 가기만 하면 로마 군병들이 그의 말을 믿고 시신을 넘겨줄 수 있는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아마도 빌라도 총독은 공문 형태의 허가서를 주었을 것이다. 그런 모든 절차를 거쳐 시신을 인수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성경은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서 판결을 받고 십자가에 고난당하시고 운명하신 후 장례를 치른 일들이 모두 예비일 하루 사이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기록하였다. 일몰이 예비일의 끝이요 안식일의 시작이었다면 시간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제자들이 행한 장례 절차는 예수님의 시신을 세마포만 둘둘 말아서 돌무덤에 둔 것이 아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인수 받아 조심스럽게 마가의 다락방으로 옮겼을 것이고 그곳에서 시신을 깨끗이 씻기고 몰약과 침향을 섞은 향품을 정성스럽게 몸에 발랐다. 유대인의 장례법에 따른 엄숙한 과정을 거쳐 그 시신을 세마포로 싸서 돌무덤으로 운구하였을 것이다.
요한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모든 장례절차는 유대인의 장례법에 따랐다고 하였다.
【요19:37-42】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마가의 다락방으로)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이 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유대인들의 장례법에 따라 향품을 백 근이나 사용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시신을 깨끗이 닦은 후에 향품 백 근을 시체에 바르고 세마포로 싸려면 두세 시간에 되는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 분이 누구이신가? 사랑하는 주님의 시신을 씻기고 향품을 바르는 과정은 슬픔에 싸여 엄숙하고 경건하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는 장례법을 제대로 아는 명문가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안식일 해가 뜨기 전에 장례식을 마치려고 서둘렀으나 시간이 허락하는 한 경건하고 엄숙하게 장례식을 진행했을 것이다.
복음서에 의하면 장례식을 마친 후 남자들은 모두 돌아갔지만 여인들은 무덤가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고 하였다. 안식일의 해가 밝아오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더 주님 곁을 지키고 싶었던 여인들의 슬픔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마27: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아 있더라.
【눅23:52-54】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이 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여인들은 안식일이 이르자 집으로 돌아가 계명에 따라 안식일에 쉰다. 그리고 안식일이 끝나가는 이른 새벽에 다시 무덤을 찾아온다.
【마28:1】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해뜨기 직전에)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예수님의 장례과정을 기록한 복음서의 기록을 면밀히 검토하면 하루의 시작은 일출이라는 점이 더욱 명백해진다.
5. 부활하신 날의 예수님의 행적에 나타난 하루의 시작은 일출
누가복음 24장에는 예수님 부활하시고 그날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 동행하셨다는 기록이 있다. 예수님은 두 제자와 함께 대화하며 엠마오까지 동행하였는데 엠마오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가 저물었다고 하였다.
【눅24:29】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하는 것 같이 하시니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예수님의 축사하신 떡을 먹다가 그제야 예수님을 알아보았지만 홀연히 사라지셨다. 이에 놀란 두 제자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급히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와 열 한 제자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제자들이 모여 있던 그 밤 그 자리에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눅24:33】 곧 그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니라.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그런데 이 장면을 두고 요한복음은 안식 후 첫날 저녁이라고 그 시점을 밝히고 있다. 일몰을 기준으로 날짜가 바뀐다면 이미 둘째 날이 되었어야 하지만 성경은 부활절 낮에 이어지는 밤을 두고 첫째 날이라고 하였다. 하루의 시작은 일몰이 아니라 일출이었기 때문이다.
【요20: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6. 속죄일의 규례가 일몰설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레23:32】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구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는 위 구절을 두고 하루의 시작이 저녁이라는 근거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 근거로 그들은 일곱째 날 안식일이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 구절은 일곱째 날 안식일에 관한 말씀이 아니고 속죄일 규례에 관한 것이다. 또한 날의 시작과는 무관하게 속죄일을 준비하는 방법을 설명했을 뿐이다.
【레23:26-32】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구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찌니라.
전술한 바와 같이 절기에는 주간절기와 연간절기가 있다. 성경은 주간절기인 일곱째 날을 안식일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연간절기들도 안식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위 구절은 연간절기인 속죄일 즉 7월 10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는 말씀이다. 다만 속죄일만큼은 특별히 그 전날 저녁부터 회개기도로써 준비하라는 말씀이다.
속죄일을 준비하기 위해 그 전날인 9일 저녁부터 안식을 하여야 하지만, 엄연히 날짜는 구별이 된다. “이튿날 저녁”이라는 표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성경의 날짜규정이 일몰설이라면 7월 10일 속죄일은 그 전날 저녁에 시작되는 것이 당연하기에 특별히 전날 저녁부터 지켜야 한다고 강조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 구절은 그 전날 저녁부터 안식하는 것을 특별규정으로 말씀하신 것이니 성경의 날짜규정이 일출설이기 때문 아니겠는가?
7. 느헤미야의 기록도 일몰설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느13:19】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 갈 때에 내가 명하여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내 종자 두어 사람을 성문마다 세워서 안식일에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매
위 기록은 느헤미야 총독 당시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의 형편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일몰설의 근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일곱째 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장사꾼들이 성문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전날부터 출입을 봉쇄한 조치일 뿐 안식일 자체가 저녁부터 시작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느13:15~16】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하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유다 자손에게 예루살렘에서도 팔기로 내가 유다 모든 귀인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당시 안식일이 되면 예루살렘 인근의 백성들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이를 틈타 상품을 파는 상인들이 안식일이면 온갖 물건을 팔려고 모여들었던 것이다. 특히 야채 과일과 같은 농산물이나 수산물의 경우 신선도를 유지하여 판매하려니 상인들은 당일 수확하여 밤늦게 성안으로 운반하였다가 안식일 날이 밝으면 거리에 내놓고 팔았던 것이다.
느헤미야 총독은 이러한 상인들의 출입을 막아 예루살렘 성전이 안식일 날 경건한 모습을 가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부하들을 금요일 저녁부터 성문마다 배치하여 상인들의 물품 반입을 금지시켰던 것이다.
【느13:20】 장사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번 예루살렘 성밖에서 자므로 내가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 후부터는 안식일에 저희가 다시 오지 아니하였더라
장사꾼들이 금요일 저녁 성문을 통과할 수 없자 성문 밖에서 노숙까지 하며 아침에 물품을 성안으로 반입하려고 하자 그들을 체포하겠다고 알려서 다시는 안식일에 장사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다.
안식일 전날 성문을 닫은 것은 안식일이 저녁에 시작되기 때문이 아니라 다음날 지키는 안식일을 경건히 지키기 위해 장사꾼들의 물품 반입을 금지하는 조치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