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문
사도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폭정 소식을 접하며 교회의 미래를 염려해야 했다. 황제는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의 정치적인 에너지가 언제든지 교회를 싸움판의 한 가운데로 몰아넣을 판이었다. 결국 요한이 걱정하던 대로 교회는 어려움에 처했고 사도 요한은 로마 제국의 압박을 완화하기 위해 죄인이 되기로 했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서 100Km 떨어진 항구까지 압송되고 다시 100Km 떨어진 외진 섬으로 유배되었다.
밧모(Patmos)섬에서의 생활은 외로웠지만 주님 앞에서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게 한 시간이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에 대한 첫 인상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만찬장에서 그분의 무릎에 앉아 멋모르고 포도주 잔을 받았던 순간 그분의 비장했던 표정도 기억이 새로웠다. 훗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이 새삼스럽게 깨달아질 때마다 십자가 앞에서조차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지 못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러한 십자가의 짐을 내려놓기 위해 젊음을 불태우며 교회의 성장과 함께 인생을 보낸 세월이 60여년이었다. 이미 오래 전에 주님 품으로 돌아간 베드로나 야고보 같은 분들에 대한 기억도 이제는 희미할 지경이었다. 사도 바울을 통해 교회가 전 로마제국으로 확산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갈릴리 바닷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비전이 그의 마음속에 꿈틀거렸다. 주님의 생애를 되돌아보며 그의 행적과 말씀의 의미가 요한을 다시 한 번 거듭나게 만들었다.
이제는 교회가 로마제국 곳곳에 세워지고 복음을 따르는 성도들의 숫자가 로마 정부조차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그러나 교회의 규모가 커질수록 사랑보다는 절차와 제도가 중요시되곤 하였다. 교회를 움직이는 힘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의 권력으로 간주되었고 교회가 세계화될수록 결집력은 약화되었다. 교회의 세속화를 막을 방법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밧모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은 그러한 교회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밧모섬에서 외롭게 기도에 힘쓰던 사도 요한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도 요한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으리라. 사람의 노력과 염려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미래의 시간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따르는 도리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바벨론에 70년간 포로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장차 교회는 사단에 의해 암흑세기를 맞이하는 수모를 겪을 것에 대해 사도 요한은 아멘으로 응답하였다.
그렇다면 원대하신 하나님의 계획의 끝은 무엇인가? 사도 요한이 궁금한 대목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택한 하나님의 백성 14만 4천을 보여주셨다. 그들은 새 하늘 새 땅이 이루어지면 하늘 예루살렘에 거할 예언의 주인공들 같았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삼기로 한 14만 4천의 특징을 보여 주셨다. 그가 가장 궁금한 대목이었다. 70억이 넘는 사람들 중에서 그들이 선택받게 될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그들의 특징이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초대 교회 당시로는 너무나 당연한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계14:12) 사도 요한은 말세가 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특징이 되는 지 계시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중세 종교암흑세기를 통해 성도들의 특징인 하나님의 계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을 보여주셨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 책자를 통해 종교개혁 이후 전 세계에 가장 유력한 기독교 세력으로 발돋움한 개신교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믿음을 지킨다는 이 기준에 적합한지 살펴 볼 것이다. 여러분이 이 책자를 진지하게 끝까지 읽는다면 말세를 만난 이 시대의 영적인 상황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마지막 시험이 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교회가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순종하고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모쪼록 독자들은 하나님의 진리가 왕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이 소책자의 내용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가 베뢰아 사람들처럼(행17:11) 진지하게 연구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