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복음의 일군은 새 언약의 일군이다
복음은 또한 새 언약이라고 하였다. 기록한 바
【엡3: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 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하였으며 또는
【고후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하였다. 바울은 자기가 복음의 일군이라고도 하고 새 언약의 일군이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로마 교회에 편지할 때에는
【롬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하였으며 예수님에 대해서는
【히9:15】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하였다.
이 새 언약에 대하여 주님께서 직접 유월절 만찬석에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하시며 확실한 증거로 인을 쳐 주셨다.(눅22:20)
복음이나 새 언약은 모두가 주님 살아계실 때에 가르쳐주신 교훈이다. 주님 십자가 후에는 다른 진리나 교리를 가르쳐주신 일이 없고 십자가 전에 가르쳐주신 교훈을 재 강조하시며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신 것뿐이다.(마28:20)
그런데 누가복음 22장 20절에는 새 언약이라고 적혀 있으나 요한복음 13장 34절에는 새 계명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용은 똑같은 하나님의 언약이다. 예수님께서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신 그 장소가 유월절 성만찬 예식장에서 하신 말씀이고 요한복음의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그 장소도 유월절 성만찬 예식장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에서는 새 계명이라고 기록한 데가 없고 또 요한복음 안에서는 새 언약이라는 기록이 없다. 그 이유는 결국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에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출34:28, 신4:13) 하였다. 즉, 언약을 곧 계명이라고 하였으니 새 언약은 새 계명이라는 뜻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누가복음에는 잔을 가지시고 새 언약이라고 하였고 요한복음에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새 계명이라고 하셨으니 문제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원리를 깨닫게 되면 새 언약이나 새 계명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마지막 유월절 만찬석에서
【눅22:19~20】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하시었다. 주님의 살과 주님의 피를 여러 형제들이 다 같이 먹고 다 주님 안에서 한 몸이 됨으로 형제들이 서로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
【고전10:16~17】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하였으니 주님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있으니 어찌 자기 몸을 미워할 사람이 있겠는가?
우리는 근본 악하기 때문에 사랑할 줄 몰라도 주님의 살과 주님의 피가 내 안에서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으로 새 언약을 주신 그 말씀대로 유월절을 실행할 때에 주님의 살과 피가 여러 형제의 몸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서로 사랑함으로써 새 계명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