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옛 언약과 새 언약
[히9:1,15]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첫 언약은 모세율법 즉 옛 언약을 의미한다. 우리는 위 구절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옛 언약과 새 언약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옛 언약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것이고, 새 언약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새 언약을 그리스도의 율법이라고도 하였다.(고전9:21 비교)
하나님의 말씀이 언약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약의 특징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언약을 체결할 때 그 언약의 당사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경에 나타난 옛 언약과 새 언약도 그 언약의 당사자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그 당사자가 부담하는 권리와 의무, 나아가 그 효력의 크기와 범주에 서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1. 언약의 당사자
[레26:9] 나의 너희와 세운 언약을 내가 이행하여 … 너희로 번성케하고 창대케하리니
[민6:27] 너희 제사장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 축복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언약을 세운 사람은 언약의 당사자가 되고 그는 언약을 이행하는데 따른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중요한 것은 언약의 이행과정에서 당사자의 이름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어떤 계약을 체결했을 때, 개인의 이름으로 했을 때와 법인 대표의 이름으로 했을 때 큰 차이가 발생한다. 같은 이름이라 하더라도 그 계약에 따른 권리와 책임의 한도가 서로 다르다. 이처럼 계약 당사자의 명의가 어떤 이름으로 이루어졌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옛 언약을 세운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고 새 언약을 세운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언약의 당사자는 삼위일체이신 하나의 하나님이지만 언약을 세운 당사자 이름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옛 언약은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이행될 때 효력이 발생하고, 새 언약은 ‘예수’라는 이름으로 이행될 때 효력이 발생한다. 언약의 당사자인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에서 예수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옛 언약은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맺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율법에 따라 제사드릴 때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기도해야만 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 사이에 맺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새 언약에 따라 예배를 드릴 때 ‘예수’의 이름을 불러 기도한다.
옛 언약의 당사자는 여호와 하나님이고 새 언약의 당사자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만약에 옛 언약의 제사를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가 아닌 다른 이름을 부른다면 약속된 축복을 받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신약의 성도들이 새 언약의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가 아닌 다른 이름을 부른다면 약속된 영생의 축복에 참여할 수 없다.
2. 옛 언약의 제사와 그 효력
하나님의 구속사업은 죄 사함을 통해 완성된다. 그런데 죄 사함은 죄의 값을 치르지 않고는 주어지지 않는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롬6:23 레17:14)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도 없다.(히9:22).
그런데 옛 언약은 언약의 당사자인 여호와께서 직접 죽으신 적이 없다. 즉 옛 언약을 세우실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피 흘린 사실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짐승의 피를 흘려 희생 제물로 삼았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짐승의 피로써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육체의 죄를 사할 뿐이라는 점이다. 짐승의 피로서는 영혼 구원을 이루는 온전한 죄 사함에 이르지 못한다.
[히9:16-17]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언약의 효력이 발생되려면 언약을 세우신 자가 죽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옛 언약을 세우시기는 하였으나 친히 죽지 아니하시고 짐승의 피로 자신의 죽음을 대신하였다.
[히9:19-22]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드리는 옛 언약의 제사는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었다.(히9:10) 옛 언약으로는 언약 본래의 효력인 죄 사함에 이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생에 이를 수는 없었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히10:1-4]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히8:7-13]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찌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중략)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
여호와의 이름으로 드렸던 옛 언약의 제사는 참 것인 새 언약의 제사가 오기까지 모형과 그림자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3. 새 언약의 제사와 그 효력
[눅22:13-20]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중략)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마26:17-28]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중략)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새 언약은 유월절 저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세우셨다. 죄 사함을 주시는 새 언약을 세우기 위해 예수께서 친히 피를 흘리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새 언약이 세워졌고 인류에게는 예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 언약도 옛 언약처럼 제사제도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오늘날 대다수 교회들이 구약은 제사제도가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새 언약의 제사제도에 대해서는 무지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는 무책임한 주장이 교회 안에 만연되어 있다.
새 언약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도 죄 사함과 구원은 제사제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물론 모세율법을 따르는 옛 언약의 제사제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보이지 아니하는 세계에서 드려지는 영적 제사제도이다. 땅의 제사제도가 하늘의 제사제도로 변역된 것이다.
땅의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옛 언약)은 폐지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새 언약)를 베푸셨다. 땅의 장막에서는 레위 지파(옛 언약)가 제사장이었지만 새 언약의 하늘 성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새 언약)께서 친히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다. 옛 언약의 제사에는 짐승의 피(옛 언약)로써 제물을 삼았으나 하늘성소에서는 그리스도의 보혈(새 언약)이 영원한 희생제물이 되신다.
[히8:1-2]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히9:11]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하신 그 성소는 주께서 베푸신 하늘성소이다. 신약 교회는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새 언약 안에서는 모든 성도가 스스로 제사장이 되어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일하시는 하늘성소에서 영적인 제사를 드리게 된다.
[요4:21-2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중략)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신약의 교회가 ‘시온산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이라며 ‘거기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함께 참석하여 예배를 드리는 곳’이라고 하였다.(히12:22)
그렇다면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언제 죄인들을 위해 제사를 베푸시는가? 죄인들은 대제사장께서 베푸시는 시간에 맞추어 제사를 드려야 한다. 따라서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언제 제사를 베푸시는지 알아야 한다. 옛 언약이든새 언약이든 제사를 베푸는 시간은 죄인들이 편한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하늘성소에서 제사를 베푸는 정한 시기가 있는데 이를 절기라고 한다. 예수께서는 절기를 따라 성소봉사사업을 하신다. 하나님께서 정한 시기 즉 절기가 왜 그처럼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덧입기 위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절기의 제사에 참여하려면 절기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새 언약의 제사제도는 죄 사함을 얻기에 온전한 것이고 그 언약의 당사자는 예수이시다. 예수께서 새 언약을 세우셨고 친히 죽으시고 피 흘림으로 새 언약의 효력을 견고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 외에 천하에 어떤 다른 이름도 구원자의 이름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를 믿고 그의 이름을 불러야 구원 얻을 수 있다는 주장도 새 언약의 영적인 제사 제도를 전제로 할 때 성립하는 주장임을 알아야 한다. 절기의 제사를 깨닫지 못한 채 ‘예수 믿음’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것은 헛된 신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