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1. 문제의 제기
[단7:13~14]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만약 다니엘서의 구름타고 오시는 예언을 베들레헴에 나신 예수로 해석하게 되면 결국 구름을 육체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 구름타고 오신다는 예수님의 약속도 육체로 성취되어야 하며, 불에 옹위되어 심판주로 오시는 그리스도와는 별개의 사건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위 구름타고 오시는 그리스도를 마지막에 강림하실 심판주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하게 되면 구름을 육체에 대한 상징으로 보아야 할 핵심근거가 사라지고 따라서 구름타고 오시는 재림과 불에 옹위되어 나타나실 강림을 별개의 사건으로 보아야 할 이유가 없다
위 구절에서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인자 같은 이‘(단7:13)가 2천 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에 대한 예언인지 아니면 마지막 강림하실 심판주에 대한 예언인지를 아는 것은 마지막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이 달린 중대한 문제이다.
2. 다니엘서 7장의 구조 분석
다니엘서 7장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다니엘이 꿈속에서 받은 이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부분(1~14절)과 ‘모신 자‘가 다니엘에게 그 꿈의 의미를 해석해 주는 부분(15~28절)으로 나뉜다.
앞부분에 나오는 꿈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다시 네 짐승에 대한 묘사(3~12절)와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될 것에 대한 부분(13~14절)으로 나뉘는데, 따라서 ‘모신 자’가 전해준 꿈에 대한 해석도 네 짐승에 대한 해석(17절, 23-25절)과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대한 해석(18절, 26-27절)이 함께 짝을 이루고 있다.
주의 깊게 살펴할 점은 꿈에 대한 모신 자의 해석이 두 번씩 반복된다는 점이다. ‘모신 자‘가 알려준 1차 해석(17-18절)이 너무 간략하여 궁금증이 풀리지 않자 다니엘은 네 번째 짐승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자 재차 질문하였다.(19-22절) 이에 ‘모신 자‘는 두 번째 좀 더 상세한 해석을 해 주고 있다. 두 번째 해석 역시 네 짐승에 대한 부분(23-25절)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회복될 것에 대한 부분(26-27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니엘서 7장에는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인자 같은 이가 나타나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할 것’에 대한 예언에 대하여 두 번 씩이나 반복하여 그 의미를 알려준 셈이다.
그렇다면 논란의 쟁점은 좀 더 명확해진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대한 예언(단7:13~14)이 2천 년 전 베들레헴에 태어나셨던 예수님 시대에 이루어진 예언인지, 아니면 마지막 시대에 심판과 함께 이루어질 예언인지 확인해 보면 될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는 첫 단계는 ‘모신 자‘가 다니엘에게 꿈의 내용을 어떤 의미로 해석해 주었는지 다니엘서 7장 후반부에서 찾아보는 일이다. 그것도 두 번 씩이나 상세하게 알려준 모신 자의 해석을 외면한 채 달리 주장한다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3. 다니엘서 7장의 꿈에 대한 해석
아래 구절은 한 천사가 다니엘에게 알려 주는 꿈에 대한 첫 번째 해석이다.
[단7:16~18] 내가 그 곁에 모신 자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고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게 하여 가로되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모신 자‘의 첫 번째 해석은 매우 짤막하고 간결하다. 하지만 이렇게 짤막한 말씀 속에서도 우리가 연구하고자 하는 문제의 답을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네 짐승의 예언이 성취된 이후 시대(중세 종교암흑세기 이후 시대)에 이루어질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니엘은 너무나 짤막한 설명에 궁금증을 가라앉히지 못한 듯하다. 다니엘은 특별히 네 번 째 짐승과 그 이후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 회복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고 말한다.
[단7:19~22] 이에 내가 네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이러한 다니엘의 질문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네 번 째 짐승, 즉 종교암흑세기 이후에 일어날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구름타고 오실 인자를 이스라엘 나라에 태어나실 초림 예수님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다니엘의 두 번 째 질문에 대하여 ‘모신 자‘가 어떻게 답변했는지 살펴보면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모신 자‘는 23~25절에서 네 번 째 짐승의 배도의 역사를 상세히 설명한다.
[단7:23~25]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네째 짐승은 곧 땅의 네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위 구절에서 때와 법이 변개되고 성도가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낸다는 예언은 중세 종교암흑세기 천주교의 배도의 역사로 성취되었다. ‘모신 자‘는 인자가 구름을 타고 와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은 그 이후 즉 종교암흑세기 이후에 이루어질 예언임을 연이어서 설명한다.
[단7:26~27]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 즉“이라고 하였으니 앞에서 설명한 종교암흑세기 배도의 역사에 대한 심판임이 명백하다. 그리고 이 대목이 꿈속에 나타난 ‘구름타고 오실 인자 같은 이‘(단7:13~14)에 대한 두 번 째 해석임도 명백하다.
4. 구름이 육체를 상징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위에서 살펴 본 바에 의하면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인자 같은 이(단7:13)를 초림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해당 예언이 들어있는 다니엘서 7장에 그 답이 두 번이나 분명하게 들어 있으니 다른 어떤 성경구절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달리 해석해서는 안 된다.
구름타고 오실 인자(단7:13)를 초림 예수님이라고 해석하는 주장은 폐기되어야 한다. 따라서 구름이 육체를 상징한다는 주장도 폐기되어야 한다. 구름타고 오신다는 초림 예수님이 육체로 오셨으니 다시 구름타고 오신다고 하신 재림 예수님도 육체로 오셔야 한다는 주장 역시 성경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다. 이러한 잘못된 주장이 사람을 신격화하는 수많은 사교집단의 출현 근거가 되고 있다. 참으로 유감스럽기 그지없다.
먼저 단7:13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라는 표현과 관련하여 초림 예수께서도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으셨기 때문에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는 분이 2천 년 전 육체로 오셨던 예수님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초림 예수께서 권세(마28:18)와 영광(요13:31)과 나라(눅22:29)를 받으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은 예언 성취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예수님은 육체로 오시든 실제 구름을 타고 공중에 강림하시든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만을 근거로 초림 예수로 결론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몇몇 비유적인 표현을 들어 구름이 육체를 상징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히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위 구절을 해석하기를 사람들을 구름이라고 비유했으니 구름이 육체를 비유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비유의 대상이 되는 핵심주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억지 해석이다. 여기서 ‘구름 같이’라는 것은 구름이라는 본질을 의미하지 않는다. 구름이 퍼져있는 형상을 의미한다. ‘허다한 증인’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구름 같이’라고 비유한 것이다. 증인 한사람 한 사람의 육체를 드러내고자 사용한 비유가 아니다.
[유1:12]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잠25:14]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
위 두 구절을 해석하기를 거짓 선지자를 물 없는 구름 또는 비 없는 구름에 비유했으니 구름이 육체를 비유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비유의 대상은 구름 자체가 아니다. 구름이라면 비를 내릴 수 있어야 하나 안개와 같이 물 없는 구름은 비를 내리지 못한다는 점에 비유의 초점이 있다. 마찬가지로 거짓 선지자는 ‘진리가 없다’는 면에서 비유적으로 ‘물 없는’ 구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거짓 선지자’라는 표현에서 ‘거짓’이라는 점이 비유의 대상이었고 이를 ‘물 없는’이라는 표현으로 비유한 것이다. 즉 ‘선지자 = 구름’에 비유의 메시지가 있는 것이 아니고, ‘거짓 = 물 없는 = 비 없는’에 비유의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계10:1]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 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위 구절을 해석하기를 천사가 구름을 입었다는 표현은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과도한 자의적 해석이다. 구름이 육체라면 무지개는 무엇이며 얼굴이 해 같고 발은 불기둥 같다는 말씀은 무엇인가?
이런 표현들은 여기서 나타난 천사의 특별한 역할과 사명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구절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구절을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한다면 성경은 사람마다 제각각 해석하기 나름이어서 의문 투성이의 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