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멜기세덱의 반차
1. 아론의 반차와 멜기세덱의 반차
[히7:11-12]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옛 언약의 제사는 아론의 반차를 좇아 제사직분을 수행하였고, 새 언약의 제사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제사직분을 수행한다.
[히7:16]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즉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즉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된 것이니라.
[히9:9-10]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아론의 반차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아 된 것이고, 멜기세덱의 반차는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다.
[출40:13-15]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로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너는 또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겉옷을 입히고 그 아비에게 기름을 부음 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히7:11-15]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레위지파 아론의 후손들은 대대로 아론의 반차를 좇는 제사직분을 행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반드시 아론의 후손이어야 했고 단 한명도 레위지파에 속하지 않는 제사장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새 언약 아래에서 제사직분은 아론의 반차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로 변역되었다. 예수는 레위지파가 아닌 유다지파에 속한 분이었다. 구약시대에 레위지파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과 같이 레위 족보에 들지 않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다.
[히7:23-24] 저희 제사장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아론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혈육을 이어 받은 제사장들도 다 아론처럼 죽었다. 하지만 멜기세덱의 생명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그는 무궁한 생명의 능력으로 제사장이 되었고 영원히 죽지 않고 항상 제사장으로 있어 그의 제사직분도 영원히 갈리지 않는다.
아론의 반차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이라는 약점을 가진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멜기세덱의 반차는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제사직분을 행하시므로 그 직분이 갈리지 아니하고 온전한 구원을 이룬다.
2. 멜기세덱의 특징 .., “이름을 번역한즉 의의 왕이요 또 살렘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히7:1-3]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한 제사장을 등장시켰다. 제사장으로서 그의 여러 가지 특징들이 예수를 방불케 한다고 소개하였다. 히브리서 기자가 소개한 멜기세덱에 관한 창세기 원문은 한 문장으로 이루어졌고 그 원문에 대한 히브리서 기자의 해석이 독특함에 주목해야 한다.
[창14:18]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살렘왕 멜기세덱’이라는 단어를 번역하는 것으로 히브리서 기자의 멜기세덱에 대한 소개가 시작되었다.
‘멜기세덱[Malkiy-Tsedeq]’은 멜레크[melek, 왕/메시아]와 체데크[tsedeq, 정의/공의]의 합성어로서 ’공의(義)의 왕‘이란 뜻이다. 살렘왕의 히브리 원어는 멜렉살렘인데 멜레크[melek, 왕/메시아]와 살렘[shalem, 평화/안전]의 합성어로서 ’평강의 왕‘이란 뜻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제사장에 대하여 특정지역을 다스리는 살렘왕(멜렉살렘)으로 본 것이 아니고 또한 멜기세덱도 특정인을 부르는 고유한 이름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호칭을 번역한즉 첫째는 의의 왕이요 또 살렘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라고 번역하였다. ‘살렘왕 멜기세덱 =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의 이런 해석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축복을 빌어주었던 제사장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분이었음을 의중에 품고 있는 말씀이다. 히브리서기자의 이러한 의중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3. 멜기세덱의 특징 …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히7:3]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위 구절에서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는 말씀은 그를 낳은 부모가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멜기세덱의 특징이 예수와 똑 같다는 점을 히브리서 기자는 아래와 같이 말씀하였다.
[히7:8 공동번역] 사제들도 십분의 일을 받고 멜기세덱도 십분의 일을 받았지만 사제들은 언젠가는 죽을 사람들이고 멜기세덱은 성서가 증언하는 바와 같이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히7:23-24]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 앞에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으로 나타나셨던 제사장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한 분이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조차도 십일조를 드려야 했던 멜기세덱은 감히 레위지파 제사장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레위지파 제사장들을 대단하게 여겼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예수께서 멜기세덱과 동등한 위치와 신분에 계신 분임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예수는 레위지파도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유다지파에서 제사장이 나올 수 있는가? 그런데 예수께서 하늘성소의 대제사장이 되셨다니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초대교회 당시 유대교에서 나온 많은 성도들이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의문이었다. 이런 의문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창세기에 나타난 멜기세덱의 행적을 통해 답변을 주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하신 분이다. 비록 마리아의 몸을 빌어 탄생하였지만 요셉과 마리아의 혼인을 통해 태어나신 분이 아니다.
[마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멜기세덱이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듯이, 예수께서도 부모에 의해 태어나신 분이 아니고 성령으로 잉태하셨으니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으신 분이다.
4. 멜기세덱의 특징 … “족보도 없고”
[히7:3]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멜기세덱이나 예수나 제사장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족보가 없는 분들이다. 왜냐하면 레위지파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7장의 전후 문맥으로 보면 ‘족보도 없다’는 멜기세덱의 특징을 예수께서 레위지파에 속하지 아니한 유다 지파 후손이라는 데 방점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족보도 없다’는 멜기세덱의 특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멜기세덱에 관한 해석을 중시하는 교회 중에 족보 문제를 잘못 해석하여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족보가 예수님의 족보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을 예수님의 족보라고 한다면 ‘족보도 없다’는 멜기세덱의 특징과 다르게 된다. 이 점에 착안하여 어떤 교회에서는 예수는 멜기세덱의 예언을 부분적으로만 성취하신 것이고 누군가 재림 예수가 와서 ‘족보도 없다’는 예언까지 성취하셔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표현상 ‘예수의 족보’라고 할 수 없다. 이제부터 차분히 성경을 살펴가며 족보 문제에 대해 연구해 보자.
◆ 족보 = 게네아(γενεα)
히브리서 7장 3절의 ‘족보도 없고’(ἀγενεαλόγητος)의 어원은 게네아(γενεα)인데 같은 단어가 사용된 용례를 찾아보면 세대(눅16:8, 마11:16, 마12:41, 마17:17)로 번역되어 나타난다.
성경에서 ‘세대’란 하나의 족보에 속한 민족으로서 같은 항렬에 속한 무리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미국 이민 1세대 또는 미국 이민 2세대라고 부르는 용례가 이에 해당한다 하겠다.
예수님의 경우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셨으므로 혈연으로 이어진 이스라엘 민족의 일원으로서 어느 한 세대에 속하는 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족보도 없고’라는 말씀 즉 ‘게네아(γενεα)가 없고’라는 말씀이 예수님에게 적합한 특징이라 할 것이다.
◆ 족보 = 게노스(γενος)
게네아(γενεα)는 게노스(γενος)에서 파생된 단어이므로 이번에는 성경에서 게노스(γενος)의 사용 용례를 찾아봄으로써 이해를 좀 더 깊이 해보기로 하자.
게노스(γενος)는 신약 성경에서 대제사장의 문중(행4:6 γένους ἀρχιερατικοῦ), 아브라함의 후예(행13:26 γένους Ἀβραὰμ), 신의 소생(행17:29 γένος τοῦ Θεοῦ), 다윗의 자손(계22:16 γένος Δαυίδ) 등 여러 가지 번역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중, 후예, 소생, 자손 등의 용례를 찾아 볼 수 있다. 주로 같은 혈연을 가진 집안이지만 조상보다는 후손들을 일컫는 의미로 번역되고 있다.
예수님은 결혼하지 않았으며 후손도 없으니 후손을 일컫는 단어인 ‘게노스(γενος)가 없고’라는 의미로 보더라도 예수님에게 적합한 특징이라 할 것이다.
◆ 구약의 족보들
족보라는 단어에 대한 구약성경의 용례도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히브리어로 족보는 야하스와 톨레다 두 단어가 사용된다. 야하스는 보계대로(느7:5), 보계대로(대상7:5), 잇도의 족보 책(대하12:15), 족보에 기록된(대하31:16) 등으로 번역되어 사용되었다.
구약 성경에는 야하스보다 톨레다가 더 많이 등장한다. 톨레다의 사용 사례를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아담의 계보(창5:1),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창10:1), 셈의 후예(창11:10), 데라의 후예(창11:27), 이스마엘의 후예(창25:12), 이삭의 후예(창25:19) 등의 용례로 사용되었다.
창세기에 나타난 톨레다(תּוֹלְדֹ֖ת)의 사용 용례를 살펴보면, 족보의 기원이 되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 후손들을 기록한 것이다. 노아의 톨레다(족보/계보)라고 하면 노아의 조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노아로부터 비롯된 그 후손들을 기록한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예수님의 톨레다(족보/계보)가 있으려면 그 후손들이 있어야 하겠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혼하지 않았고 자손도 없으므로 톨레다(족보/계보)가 없는 분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대로 예수님은 게네아도 없고 게노스도 없고 톨레다도 없는 분이다. 즉 어떤 의미로 사용하더라도 ‘족보도 없고‘라는 멜기세덱의 예언을 예수님은 매우 잘 성취하고 계신 분이다.
5. 예수는 레위지파가 아닌 별다른 한 제사장
하나님께서는 오직 레위 지파 후손들만 성소에서 제사직분을 받을 수 있게 하셨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레위 지파 외에는 제사직분이 결코 허락될 수 없었다. 수많은 제사장들이 있었지만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자로서 제사장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출40:13-15]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로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너는 또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겉옷을 입히고 그 아비에게 기름을 부음 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그런데 단 한 분 멜기세덱은 예외였다. 멜기세덱은 레위의 족보에 들지 아니한 유일한 제사장이었다. 제사장으로서 유일하게 계통이 달랐던 분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도 멜기세덱과 같이 계통이 다른 경우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히7:11-13]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중략)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중략) 이 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위 구절에서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라 함은 ‘레위 지파가 아니기에 제사장이 한 명도 있을 수 없는 다른 지파’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다른 지파에 속한 자란 곧 유다 지파에 속한 예수이시다.
[히7:14-15]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예수께서 ‘족보도 없고’라고 한 것은 제사장 족보라고 할 수 있는 레위 족보를 의미한 것이었다. 예수께서 레위 지파에 들지 아니한(족보가 없는) 별다른 한 제사장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므로 ‘족보가 없고’라는 의미를 ‘이스라엘 족보에 들지 아니한 이방인’으로 해석하는 것은 참으로 엉뚱한 자의적인 해석이라 할 것이다.
6. 온전하고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차
[히5:8-10]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시110:1-4]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중략)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예수께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온전하고 영원하신 대제사장으로 확정된 분이다. 시편기자가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하신 것은 장차 유다 지파에서 나신 예수께서 하늘 성소의 대제사장이 되실 것에 대한 예언이었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심으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하늘 성소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심으로서 그 예언을 온전히 이루셨다.
성경은 예수께서 온전하시고 영원하신 대제사장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예언 성취가 부분적이어서 온전한 예언 성취를 위해서는 예수님이 육체로 재림하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히브리서 기자의 말씀에 어긋나는 해석이다.
히브리서 기자의 기록을 다시 한 번 살펴보기 바란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예언을 성취하기에 어떤 조건도 부족함이 없다고 하였다.
[히7:1~3]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 (그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빌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늘 성소의 대제사장으로 계시는 예수는 근본이 하나님의 본체이시다. 그는 스스로 있는 자이시며 당연히 아버지 어머니가 없으시다. 생명의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족보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그는 아버지가 누구며 어머니가 누구라고 기록할 수 없으며 족보에 대한 기록도 있을 수 없다.
역사적인 인물로서 멜기세덱이 성경에 아버지 어머니나 족보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은 그가 이방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멜기세덱을 예언적인 인물로 사용하시기 위해 일부러 멜기세덱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족보에 관하여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에게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고 하신 이 말씀은 초림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부수고 부활하여 하늘 성소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심으로써 모두 이미 이루어진 예언이다.